22-25면/윤은호 교수의 미디어비평/당신은 ‘환상’일까요, 판타지일까요, 이상한 우영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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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7-18 17:12 조회9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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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환상’(illusion)일까요, 판타지일까요,
이상한 우영우님?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작년 말의 일이다. 자폐에 대한 왜곡된 스토리텔링이 넘치는 가운데 또 다시 ‘EQ가 떨어지는’ ‘아스퍼거 증후군’ 변호사의 이야기가 드라마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애초에 2020년에 〈뮤직〉(Music) 사태로 인한 해외 자폐당사자들의 비판 소식을 이미 듣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마침 2022년 ICD-11 시행으로 ‘아스퍼거 증후군’의 국제적 종식을 앞두고 있었던 시점이기에 조용히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이걸 문제 삼느냐’는 내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다행히 총의를 얻어 2021년 마지막 날, 우영우에 대한 비판 성명서를 트위터를 통해 내놓았다. 그리고 제작사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영우가 소리소문 없이 방송을 시작했다.
법무법인 한바다에 들어가게 된 우영우 변호사. 첫날부터 회전문에 들어가려다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이야기를 들은 대로 정명석 변호사의 사무실에 출근한 우영우 변호사. 그러나 최고의 학점을 받은 성적표와 스펙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이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한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통해 성장해 나가며 더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우영우 변호사의 일대기다.
우영우는 한국의 자폐당사자라면 모두가 당하는 학교폭력을 경험했고, 또한 깊은 우정을 가진 친구를 가지고 있다. 어떻게든 뛰어난 지능과 능력으로 무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사회에서 성공했고, 지금은 변호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 드라마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폐당사자’를 닮은 듯한 사람도 나온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 자폐특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영우는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불가능한 현실에 가까운 것 같다. 우선 우영우가 어떻게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는지부터가 미스테리다. 우영우는 장애인 전형을 거쳐 학교에 들어갔을까, 아니었을까? 둘째로 전후사정을 따져보면 우영우는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2년 만에 변호사 시험을 한 번에 붙은 것 같다. 정말 그 머리 나도 부럽다. 한국의 사법 체계는 아직까지도 우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데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변호사 시험은 모두 답안지를 수기로 제출하게 되어 있을 터이다. 수능시험에 자폐 당사자를 위한 시험 시간 추가 같은 정당한 배려는 찾아 볼 수 없을 터이니 입학시험과 변호사 시험 모두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을 터이다. 자폐당사자가 소근육 운동에 약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영우는 아마 일반인을 압도하는 놀라운 실력을 갖추었을 테니 글씨를 잘 쓸 터이다. 여기서부터 뭔가 현실과의 차이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다음으로 우영우는 고래를 좋아한다고 한다. 고래라고? 자폐인의 강력한 관심(intense interest)에 자폐당사자가 고래 등의 동식물을 좋아한다는 보고는 그리 많지 않다. 자폐당사자들은 보통 주변에 있는 인공적인 것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물론 주변 환경이 자연으로 가득하고 우영우가 고래가 가까이 있는 섬에 살았다면 더욱 쉽게 고래를 좋아했을 터이지만 우영우는 어렸을 때 도시에 살았다. 집에 고래 책이 가득하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우영우의 서가에서 법률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고래를 담은 책이나 미디어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요즘 ‘아스퍼거’ 신봉자들을 따라 어떤 누리꾼이 만들었다는 ‘패션 자폐증’이라는 단어가 떠올려지는 순간이다. 자폐당사자들이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고 잘못 말한 5화의 내용도 아쉬움이 드는 지점이었다.
이런 식의 불일치하는 장면들을 여럿 찾다 보면, 우영우가 우리와 같이 이중공감문제를 공감하는 당사자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처음 1화를 봤을 때도 그 불일치를 아닌 것처럼 넘어가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박은빈 배우가 자폐에 대해서 이해하고 잘 연기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것을 감안하면 더 세세한 것을 짚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다. 다만 박은빈 배우가 선정된 이유가 자폐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발음’을 해서라는 코멘트를 생각하면 자폐당사자를 연기자로 쓰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이었나는 아쉬움이 든다.
우영우는 단연코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청률이 첫 화 0.5%에서 6화 9.56%(닐슨코리아)로 크게 상승했다. estas가 작년에 발표했던 성명을 누군가가 발견한 것이 통합해 천 개가 넘는 알티를 탄 것을 보아해도, 자폐특성에 대한 관심 또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과정에서 당사자 지향적인 관점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대신 일반신경인의 해석이, 부모나 전문가의 목소리만이 돌아다닐 뿐이다. 그나마 당사자들의 입장을 완전히 묵살하고 싶지는 않았던지 우영우를 지지한다는 필리핀의 자폐당사자의 글만이 인용돼 돌아다닐 뿐이다.
다만 우영우가 자폐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늘리고 있는 점은 평가되어야 한다. 트위터에서 자폐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던 떄도 없었다. 자폐라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던 때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영우를 어떻게 봐야 할까? 자폐를 전유한 환상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자폐당사자를 위해 제시된 판타지일까? 최근에 논문을 청탁받아([각주]윤은호(2022), 판타지와 기술은 어떻게 화해했는가 – 모리스, 톨킨, 웹소설 -, 22년도 7월 인문과학연구소 학술대회,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22. 7. 23.)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와 관련된 문헌들을 간략하게나마 읽게 됐다. 모리스는 켈름스콧 출판사(Kelmscott Press)의 유려한 출판과 모리스 회사의 디자인 활동으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계관시인 의뢰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시인이었으며, 이후 노동자의 비인권적인 현실을 깨닫고 사회주의 활동에 나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모리스가 그 과정을 거쳐 판타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판타지 작품을 만드는 도상에 있는 모리스의 글로 우리나라에서 <에코토피아 뉴스>로 번역된 <미지에서 온 소식>(News from Nowhere)이 있다. 이 소설에서 모리스는 자신이 바라는 미래의 사회현실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양, ‘나’로 바꾸어 전달한다. 그리고 소설은 이러한 세상이 곧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마무리된다. 여기서 환상과 판타지의 경계선이 정해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을 그저 재생하고 반복함으로서 자기 충족적 현상을 바라는 것이 환상이라면, 그것을 넘어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변화를 바라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판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영우는 환상인가? 판타지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남길 대상은 이제 나머지 텍스트를 준비하고 만들어 낸 사람들에게 있을 것이다. 다만 총 16부작으로 전체 영상이 다 상영되는 8월 23일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의 현상을 바라보고 이렇다, 저렇다 확정하여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전체 공개가 이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평가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지금 당장 구체적인 평가를 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편집자에게/사진을 이미지로 변환해 디자인으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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