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서울대 수시합격한 청각장애인 김준희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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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12-16 14:57 조회3,4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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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교기자의 차별 없는 세상>
서울대 수시합격한 청각장애인 김준희군 이야기
MC: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의 실제 삶을 통해
장애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시간입니다.
정창교기자의 차별 없는 세상!.
국민일보 정창교기자 전화연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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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교기자 인터뷰 ♠
1) 오늘은 어떤분의 이야기인가요.
“집 근처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월 1회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인복지 분야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말을 한 청각장애인이 있습니다.
2) 어떤 분인가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부 수시 모집에 합격한 인천 부광고등학교 3학년 열아홉살 청각장애 1급 김준희군의 이야기입니다.
3) 그동안 공부하느라고 다른 일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을텐데 대견한 청년이네요. 사실 고3학생들!! 대입수능 준비하느라 봉사 마인드를 가질만한 여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는 자신보다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같은 반 발달장애인 급우의 도우미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에 대해 눈을 떴다고 덧붙였습니다.
4) 그랬군요. 근데 청력이 얼마나 남아 있다고 하던가요.
김군은 왼쪽 귀 95데시벨 이상, 오른쪽 귀 60데시벨 이상의 소리만 겨우 들을 정도로 고도 난청이어서 세살 때부터 보청기에 의지했습니다.
김군이 어릴 때 ‘고도 난청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 마흔네살 이화숙씨는 처음엔 자책감에 시달렸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김군의 언어치료에 매달렸습니다. 청각장애가 있으면 언어장애도 동반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김군은 네 살때부터 언어치료 교육센터를 다니며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연습을 했습니다. 집에서도 앉은 자리에서 10권이 넘는 책을 읽으며 발음 연습을 했습니다.
5) 김군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발음 연습을 하기 까지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겠죠.
김군은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유치원 입학 무렵 부모들은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인천 부평역 인근으로 이사와 초·중·고를 모두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시켰습니다. 토요일마다 금융권에 있는 아버지가 주재하는 가족회의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가족회의를 할 때마다 아버지가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는 여동생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줬습니다.
6) 그랬군요. 그럼 현재 주변 사람들과 어느 정도 의사 소통이 가능한가요.
그런 노력 덕분인지 김군은 완전하게 듣지는 못하지만 대화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따로 수화를 배우지 않고 지금까지 지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 특수교육보조원이 있다는 정보를 알기는 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장애학생들을 위해 양보했습니다. 수업시간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보며 노트 필기를 한 그는 수업 내용을 전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구어로 의사소통을 한 것입니다. 그는 "학교 수업 외에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열심히 들었는데 강사 선생님의 얼굴이 컴퓨터 화면에 클로즈업돼 있어 입 모양을 보기가 편했다"고 말했습니다. 김군은 “쉬는 시간 친구들에게서 노트를 빌려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교무실에 직접 찾아가 선생님께 여쭤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7) 교우 관계는 어때요.
김 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급 반장을 할 정도로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다른 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말수가 적고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한국의 스티브 호킹'으로 불리는 이상묵 서울대 교수의 사연을 듣게 되면서 롤모델로 삼게 되면서 목표가 분명해졌습니다. 탐사활동 중 불행하게 전신마비 장애를 얻었지만 꿋꿋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 활동을 하는 이 교수는 그 때부터 김 군의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나서기 전 현관문 앞 거울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런 사연을 알고 있는 가족들은 김군에 대한 기자들과의 인터뷰 당시에는 기쁜 마음으로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지만 인터넷에 기사가 나간 뒤 댓글에 올라온 글을 보고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8) 안좋은 덧글들이 달렸었나보네요.
그래서 더욱 장애인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커진 것 같군요.
사실 김군은 어릴 때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처럼 되기위해 경제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나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된 지금은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장애인들을 돌보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대에 들어가 다시 관심을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김군의 최종 진로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청각장애인들의 경우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극히 일부만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할 뿐 전문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김군의 서울대 수시입학에 대한 감동스토리가 끝까지 좋은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인터넷 댓글을 보니까 김군이 지동원 선수를 닮았다거나 축구를 잘한다거나 학교에서 최고의 성적을 보유한 실력자라는 우호적인 글쓰기가 있는가하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서울대에 들어간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글도 있었습니다. 청각장애인의 서울대 입학을 놓고 나타난 두개의 시선에 대해 좀 더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국 사회보장청에서 일하는 재미교포 새러 에드워즈씨가 자신이 장애인이고 여성이고 동양인이어서 이 자리에서 일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터넷에서의 공격이 선플로 바뀌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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