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5/무장애예술주간, 영국 장애예술의 목소리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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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1-19 22:19 조회1,0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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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호, 문화예술현장을 가다] 무장애예술주간, 영국 장애예술의 목소리를 듣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는 영상 ․ 퍼포먼스 중심으로 진행
시각예술, 발달장애 예술의 목소리는 어디에…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예술이 위기에 처했다. 장애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멈춰있을 때는 아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장애 중심의 문화활동을 이끌어낼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 시점을 이끌어낸 계기가 될 수 있을법한 행사가 한 해를 마무리하기 시작하는 11월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문화예술원의 주도로 펼쳐졌다. 최초의 정부 주도 장애예술 행사인 ‘무장애예술주간: No limits in seoul’은 11월 9일부터 19일까지 2개의 낭독공연, 12개의 동영상이 온라인으로 상영되었으며, 이외에도 3개의 탭톡, 5개의 필름토크가 이뤄졌다. COVID-19로 인해 행사 진행이 늦어지기는 했으나, 장애예술 활동을 정부에서 활성화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개막 동영상에서 안중원 한국장애문화예술원 위원장은 “장애예술의 국제교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실연하기 위해 국제장애인예술주간 행사를 기획했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계획한 사업들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전하면서도 “세계 각국의 많은 분들이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참가하면서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이번 온라인 행사를 통해서 무한한 발전성과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 장애예술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한 박양우 문화체욱관광부 장관은 “무장애예술주간은 장애, 비장애 구분 없이 모두가 주인공인 무대”라면서 “사람이 중심인 문화는 차이를 다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올해 처음 문을 여는 무장애예술주간이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의 특징 중 하나는 주한영국대사관과 영국문화원이 적극적으로 후원한 덕에, 영국 문화예술의 활동 현황을 깊게 맛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탭톡의 대화의 발제를 진행하신 장애 아티스트들 또한 영국 분들이셨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성과를 가지고 있는 영국의 장애에 기반한 연구가 이뤄질 수 있었다. 특히 사이먼 스미스(Simon Smith) 대사가 축사를 주신 점 또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뛰어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던 이번 주간은 몇 가지 한계점에 의해 빛이 바랐다. 첫 번째로, 작품들의 영상이 대부분 해외 창작자들, 무용, 연극, 다큐멘터리 등으로 꾸며졌다는 것이다. 현재 장애예술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영역들은 (아쉽기는 하더라도) 시각예술, 특히 그림이다. 특히 국내 장애예술의 창작자들 또한 아직까지 영상 영역으로 해결될 수 있는 작업들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이나 조소 등 ‘국내 장애예술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보여주고, 아트 코멘터리라도 찍어서 전달했다면 해외 관심자들에게 국내 장애예술의 현상을 잘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COVID-19의 영향이 지속될 상황 속에서, 내년에는 분명한 대책이 있어야 했다.
또한 최근 장애예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발달장애예술’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예술: 크리에이트〉는 그나마 그러한 갈증을 채워주는 작품 중의 하나였다고 할 것이다. 다만 해당 작품이 ‘발달장애인’들의 작품들이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선호를 바탕으로 창작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에 비해 우리 ‘발달장애예술’의 현실은 어떠한지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결과를 도출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한국장애문화예술원이 가지고 있었던 감각·지체장애적, 에이블리즘적 시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말해, 장애예술을 주관하는 국가기관의 시각이 이항대립적인 차별적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차이가 드러났던 가장 큰 지점이 무장애예술주간의 오프라인 공간에서 진행된 대화 등의 행사였다. 탭톡의 발제자들이 해외 장애 아티스트들이었던 반면, 그것을 해석하는 패널들이나 진행자는 전부 국내 비장애 전문가였다. 행사 개막식에서는 장애와 비장애와의 차별이 없는 행사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장애인을 향한 엄연한 선긋기와 차별이 드러났다.
유일했던 한국인 장애인의 작품인 〈두 개의 시선〉 또한 시각장애를 가지고 계신 작곡자분께서 같이 영상을 공부하는 영상감독님과의 노력을 바탕으로 창작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그 내용면에 있어서는 기존의 장애서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11일 국내 ‘장애 아티스트’ 들을 대상으로 개최된 〈색다른 무대〉에서도 장애예술활동 창작 아이디어를 제시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들의 아이디어 발표가 있었지만, 해당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사람 중의 참가자는 기존의 ‘장애인’으로 상징되는 감각-지체 장애인, 여기에 더해 뇌전증 장애당사자 정도였으며, 발달장애인의 참가는 일절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라는 한국 사회의 차별적 시각이 장애예술에서조차 머무르고 있다는 아쉬움을 증명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탭톡 속 대화에서 발제자들이 보여준 아이디어들이었다. 특히 영국의 발표자들에게 진정으로 감동했는데, 십여 분 넘게 장애의 사회적 개념을 강조한 강의를 해 주시기도 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도 자폐특성으로 대표되는 신경다양성이 다양하다는 듯이 들어가 있었다. 즉 영국의 장애예술 개념에서는 이미 자폐인들이 장애예술의 주체로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대화 중에 언택트 개념에 대해서 깊게 문제를 제기하는 발제자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장애예술 아티스트들 중에서 이 정도의 깊은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당사자는 얼마나 될까.
글을 정리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겪었던 정반대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11월 16일부터 17일까지 영국 런던대 버크백(Birkbeck) 칼리지에서 ‘신경다양성과 창조예술’(Neurodiversity and the Creative Arts) 컨퍼런스가 이틀동안 진행됐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자폐당사자들이 주도한 이번 행사는 이틀 동안 자폐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신경다양성 개념을 포함해 다양한 논의를 이어 나갔다. 영국의 자폐커뮤니티를 통해 행사를 소개받은 저자는 밤시간대에 이뤄진 행사 일정 문제로 행사에 깊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에도 영국 자폐당사자들의 장애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 노력에 감명을 받았다. 특히 예정된 시간 이후에도 토론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저 정도의 열정 정도는 있어야 우리나라에서도 주도적인 장애예술이 이뤄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에 비하면 이번 행사에서는 장애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할 공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또한 한정적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번에 겪은 ‘무장애예술주간’은, 그 이름값을 하는 대표적 장애예술 행사로 자리잡기 위해 아직도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자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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