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면/[윤은호의 장애인 문화예술현장 탐구] 이해를 넘어서, 이야기를 담고 (1)-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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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7-18 17:15 조회8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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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호의 장애인 문화예술현장 탐구] 이해를 넘어서, 이야기를 담고 (1)
-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
지난 호의 호된 비판을 보고 난 후의 독자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좋은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실 분도, 또다시 대안 없는 비판을 하는 것이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의외로 제대로 된 전시회가 있었기 때문에 작년의 기억을 들춰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아직 오미크론의 여파가 닿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여전히 흉흉하던 작년 8월, 나는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로 향했다. 아니 향해야만 했다. 단순한 장애 예술이 아닌 무엇인가가, 그것도 공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도착한 북서울미술관에 사전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사전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에 맞다면 입장이 가능해 보였다.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들의 얼굴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는 이전에 소개드린 바 있는 ‘로사이드’와 몇몇 장애단체 모임을 북서울미술관이 연락해 만난 전시다. 그래서 다른 장애예술 전시를 볼 때 느끼는 답답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지난 시간 ACEP에서 그림의 내용과 기법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발달장애 예술’의 한계라고 말씀 드린 바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그러한 제한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하다. 자유롭게 소재에 제한을 드리지 않는 것이 로사이드의 창작 기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김동현 작가가 그려놓은 여러개의 철도노선들이 크게 확대되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폐당사자 중에서 철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이에 가상의 철도노선을 그리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가상의 철도노선이 ‘가상지도’라는 취미 장르로 승화되어 이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프리랜서가 있기도 한데, 김동현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장르를 완전히 구현하지 못했지만, 종이를 통해 상상하지 못했을 작품들을 담아 이야기를 전달했다.
재미있는 점은 김동현 작가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 선에서 작품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가상 공간으로 확실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그림도 있지만, 동시에 현실 공간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이를 비튼 노선들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대구시를 ‘식품시’로 바꿔 만든 ‘국철 식품선’ 노선은 대구선 노선을 그대로 따라 구 동해남부선으로 진입해 경주역에서 톨게이트를 거쳐 불국사에서 종착, 토함산 차량기지에서 종착하는 종잡을 수 없는 노선이다. 세계문화유산 경주를 복원하기 위해 이뤄진 중앙선 대이설로 아예 실현 불가능한 노선이 되었는데, 경주에서 불국사로 올라가는 길에 ‘요금받는 곳’이 있는 것은 과거 석굴암 가는 길의 요금소를 반영한 것일 터이다.
김동현 작가의 관심은 철도 뿐만이 아니라 고속도로, 선형적 그림으로 이르기까지 한다. 경부고속도로 전체 나들목을 그림으로 그린 작품과 일산부터 시작해 개성, 평양을 거쳐 만리장성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을 그린 그림 모두는 조국통일과 대륙철도 실현을 꿈꾸는 작가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에서 과거와 현재, 가상과 현실은 하나가 되고 합쳐져 새로운 지리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다만 작품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철도를 표현할 때 복선만으로 표현하는 점이 아쉬웠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대피선이 생기는 등 노선배치에 다양성이 생기지만 루프선 표현이나 주박(철도가 차량기지에 들어가지 않고 역이나 별도의 기지에서 머무르는 행위), 사고를 배려한 철도노선 배치가 실현되지 않아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철도 시스템을 접할 것을 추천드려본다.
다음으로 살펴볼 작가는 김경두 작가의 작품이다. 김 작가는 ‘영화를 보면서 본 로봇들을 담아 두었다가 꺼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영화에서도 이렇게까지 표현하기 힘들까 싶지 않은 작품들이 널려있다. 0.5mm도 너무 두터워서 0.3mm 샤프를 사용했다는데, 세밀한 부분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은 자폐스러운 능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긴 하다.
그가 그린 수많은 로봇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눈이다. 코 내지 입과 비슷한 기관은있어도 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고, 아예 비어있기도 하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사회소통이 가능한 신경다양인들에게는 불편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일반인들은 이런 부분까지 깊게 지켜보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심지어 각 작품에는 자세한 설명이 달려있다. 예를 들어서 한 작품의 주인공에는
대극결신 7
소드나이트 데몬 나이츠
‧ 계급가치 → 대장. 사이즈 등급: 2급
‧ 타입 : 건반, 대악기피아노건머신, 조율머신
‧ 담당타입 : 데스매치 건맥츠 & 건맥츠
라고 되어 있다. 각자의 로봇에 대해 이야기를 이미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적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도 김 작가의 세밀함과 정교함에는 놀랄 수 밖에 없지만,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디지털화가 이뤄져서 색깔이 붙을 필요가 있겠다. 그렇더라도 저렇게까지 큰 사이즈를 가진 내용을 보면서 나는 위압감과 절망을 느낀다. 저런 작품이 사실이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희망을 가지게 하는 몇몇 작가들의 작품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다만, 이 전시 작품의 미술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독자들이 동의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 앞으로 이들의 작품에 대해서 주목할 때 미술적 기법 그 자체보다도 작품을 통해서 작가들이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두 작가의 의견에 내가 이렇게까지 자세히 의견을 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미술학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라 두 작가의 취미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발달장애인’, 또는 신경다양인의 강한 관심은 작품 창작을 하기에 매우 좋은 도구다. 이런 도구의 사용을 막는 작품에는 생기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관심을 활용해 다양화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현재의 어그러진 ‘발달장애예술’을 바로잡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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