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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역설이다(모금가협회 황신애 상임이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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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8-03 10:39 조회3,1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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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누군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선생님이라고 답했다. 감히 대통령이나 경찰처럼 대단한 힘이 필요해 보이는 일은 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좀 쉽게 될 수 있는데다 내가 아는 중에 선생님은 그래도 존경받는 축에 속한 일이었으니까. 오십을 마주한 지금 나는 ‘펀드레이저(모금가)’라는 독특한 직업의 최전선에 서있다. 국내 1호 고액펀드레이저라는 별명을 얻은지도 10년이 지났다. 누가 내가 왜 이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을 때 참 곤란하다. 이 직업이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했기에 하고자 했다기보다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인생을 이 자리까지 끌어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하다보니 알게 된 것이, 세상에는 항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 공존하고 그 사이 어딘가에 도움을 연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연결하는 사람, 그들이 바로 펀드레이저이다.


세상은 늘 불평등하고 불공평한 것 투성이다. 신이 계시다면 이럴 수 없다고 분에 가득찬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원망을 쏟아낸다. 금수저와 흙수저. 나면서부터 신분과 소유에, 그리고 학벌과 성취에 출발점이 다르고, 내 삶의 권리와 정의가 박탈된 것처럼 느낀다. 이를 만회하려고 법과 제도를 바꿔서라도 내게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기실 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했다. 어딘가엔 소외된 이들이 항상 존재한다. 소외된 이들이 너무 소수이고 목소리조차 낼 수 없을 때 사회는 평온하고 정의가 살아있는 듯 하고, 다수가 소외를 느끼고 정의구현에 목소리를 크게 낼 때는 사회의 정의가 무너진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진짜 소외된 이들은 어느 때를 막론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목소리조차 낼 수도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먹을 것과 급히 치료할 약과 단지 살아갈 용기이지만, 스스로 말하려니 구걸이 돼버리고 자신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 같아 용납되지 않는다. 이를 대변해 줄 ‘목소리’가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펀드레이저는 ‘지금 바로 이들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어 모금을 하는 동안 나는 스스로 가장 복된 자라는 생각이 든다. 모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꽤 많이 여러 필요한 곳에 기부도 열심히 한다. 뭣도 모르던 시절 이 직업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라 좋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 일로 인해 내가 은혜를 입었음을 안다. 내가 힘이 있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도움으로 인해 내 존재가 의미있음’을 알게 됐다.


돈을 모으는 직업이니, 나도 모르게 부자와 넉넉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간다. 그들이 뭔가를 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막연히 갖는데, 실제 돈의 많고 적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도울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살기 힘들어서 남을 도울 형편이 못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더 재물이 생겨도 남을 돕지 못한다. 계속해서 내 쓸 것이 모자르고 써야할 일이 생긴다. 마치 기생충을 품은 사람처럼. 정작 타인을 돕는 사람들은 적게 가졌어도 스스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모금캠페인을 하던 어느 날 저녁,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연세가 있어보이는 목소리였다. ‘나도 기부해도 되나요?’하는 질문에 ‘그럼요!’라고 답했지만, 질문이 의아했다. “실은 내가 돈이 많지는 않아요. 정부에서 매달 돈 타서 쓰는데, 동사무소에서 먹을 것도 매번 갖다 주고 내가 종이도 모아서 팔고 하니까 공과금 내고 나 혼자 사는데 다 못 쓰거든요. 다달이 조금씩 어려운 사람들 돕고 싶어요. 2만원씩이라도.”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솟아올랐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부할 자격이 없는가? 기부는 부자만 할 수 있는 일인가? 부자이면서 기부하지 않는 사람과 없는 살림에 기부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부자일까?


이후 내게는 더욱 선명한 기준이 생겼다. 돈이 많아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참 부자가 아니다. 돈이 없어도 여유가 있어서 남을 돕고 나누는 사람들은 이미 그 마음에 천국이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재물이 적으면 크게 아까와 하지 않고 쉽게 나눌 수 있는데, 많으면 고민하느라 쓰지 못한다. 권력과 재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나눔과 은혜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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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직업컨설턴트
출처

한국기독공보 현장칼럼1(2021.7.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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