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나눔은 역설이다(모금가협회 황신애 상임이사 칼럼) > 지정기부 공개코너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네이버 프린트
안내
꿈꾸는마을은 인천국제공항 인근 영종도에 예술가빌리지를 만들어
공항도시의 특성을 살린 국제교류문화거점을 추진하는 것이 중장기 비전입니다.
빈곤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아시아의 장애인 예술가단체와 예술가들은 국제교류를 통해 철학이 있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나눔은 역설이다(모금가협회 황신애 상임이사 칼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8-03 10:39 조회3,238회 댓글0건

본문

어릴 적 누군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선생님이라고 답했다. 감히 대통령이나 경찰처럼 대단한 힘이 필요해 보이는 일은 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좀 쉽게 될 수 있는데다 내가 아는 중에 선생님은 그래도 존경받는 축에 속한 일이었으니까. 오십을 마주한 지금 나는 ‘펀드레이저(모금가)’라는 독특한 직업의 최전선에 서있다. 국내 1호 고액펀드레이저라는 별명을 얻은지도 10년이 지났다. 누가 내가 왜 이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을 때 참 곤란하다. 이 직업이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했기에 하고자 했다기보다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인생을 이 자리까지 끌어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하다보니 알게 된 것이, 세상에는 항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 공존하고 그 사이 어딘가에 도움을 연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연결하는 사람, 그들이 바로 펀드레이저이다.


세상은 늘 불평등하고 불공평한 것 투성이다. 신이 계시다면 이럴 수 없다고 분에 가득찬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원망을 쏟아낸다. 금수저와 흙수저. 나면서부터 신분과 소유에, 그리고 학벌과 성취에 출발점이 다르고, 내 삶의 권리와 정의가 박탈된 것처럼 느낀다. 이를 만회하려고 법과 제도를 바꿔서라도 내게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기실 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했다. 어딘가엔 소외된 이들이 항상 존재한다. 소외된 이들이 너무 소수이고 목소리조차 낼 수 없을 때 사회는 평온하고 정의가 살아있는 듯 하고, 다수가 소외를 느끼고 정의구현에 목소리를 크게 낼 때는 사회의 정의가 무너진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진짜 소외된 이들은 어느 때를 막론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목소리조차 낼 수도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먹을 것과 급히 치료할 약과 단지 살아갈 용기이지만, 스스로 말하려니 구걸이 돼버리고 자신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 같아 용납되지 않는다. 이를 대변해 줄 ‘목소리’가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펀드레이저는 ‘지금 바로 이들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어 모금을 하는 동안 나는 스스로 가장 복된 자라는 생각이 든다. 모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하지만 꽤 많이 여러 필요한 곳에 기부도 열심히 한다. 뭣도 모르던 시절 이 직업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라 좋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 일로 인해 내가 은혜를 입었음을 안다. 내가 힘이 있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도움으로 인해 내 존재가 의미있음’을 알게 됐다.


돈을 모으는 직업이니, 나도 모르게 부자와 넉넉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간다. 그들이 뭔가를 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막연히 갖는데, 실제 돈의 많고 적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도울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살기 힘들어서 남을 도울 형편이 못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더 재물이 생겨도 남을 돕지 못한다. 계속해서 내 쓸 것이 모자르고 써야할 일이 생긴다. 마치 기생충을 품은 사람처럼. 정작 타인을 돕는 사람들은 적게 가졌어도 스스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모금캠페인을 하던 어느 날 저녁,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연세가 있어보이는 목소리였다. ‘나도 기부해도 되나요?’하는 질문에 ‘그럼요!’라고 답했지만, 질문이 의아했다. “실은 내가 돈이 많지는 않아요. 정부에서 매달 돈 타서 쓰는데, 동사무소에서 먹을 것도 매번 갖다 주고 내가 종이도 모아서 팔고 하니까 공과금 내고 나 혼자 사는데 다 못 쓰거든요. 다달이 조금씩 어려운 사람들 돕고 싶어요. 2만원씩이라도.”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솟아올랐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부할 자격이 없는가? 기부는 부자만 할 수 있는 일인가? 부자이면서 기부하지 않는 사람과 없는 살림에 기부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부자일까?


이후 내게는 더욱 선명한 기준이 생겼다. 돈이 많아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참 부자가 아니다. 돈이 없어도 여유가 있어서 남을 돕고 나누는 사람들은 이미 그 마음에 천국이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재물이 적으면 크게 아까와 하지 않고 쉽게 나눌 수 있는데, 많으면 고민하느라 쓰지 못한다. 권력과 재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나눔과 은혜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댓글
댓글0
이전 댓글 보기
댓글 작성 폼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직업컨설턴트
출처

한국기독공보 현장칼럼1(2021.7.30일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꿈꾸는 마을 로고
인천 중구 영종대로162번길37, 201호(운서동, 메이폴오피스텔) / 전화:032.751.1823
Copyright (c) 2018 YEONGJONG ART ASSOCIATION. ALL RIGHTS RESERVED.
(후원계좌 : 농협은행 301-5222-8366-01 사단법인 꿈꾸는 마을)
후원하러 가기